2012.08.16 08:29

<의자놀이>

<의자놀이>는 특출난 책이 아니다. 쌍용차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접했을 칼럼과 기사들이 정리된 책이다. 르뽀라고 부르긴 어렵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찾아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다. 22명이 죽었지만 한국사회가 이토록 조용한 까닭도 그 때문일테다. 쌍용차 문제를, 아니 고압적으로 요구했던 협약 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사측과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리했다는 점이 <의자놀이>가 지닌 의미가 될 것이다.

몇 년 간 싸움을 함께 하며 고통에 경청하던 이들은 공지영에게 이 문제를 정리해주길 요청했다. 아버지 해고 이후 고아가 된 아이의 사연에 눈물 흘리던 공지영은 요청에 답했다. 그렇게 <의자놀이>가 만들어졌다. 몇년 간 고통을 경청하던 이들의 기록이 몇 달 만에 공지영란 작가를 통해 묶였다. 그 책에서 공지영이 맡은 역할은 소리통이었다. 만일 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역할에 더 충실했다면 이리 어수선하진 않았을 지 모른다. 그럼에도, <의자놀이>는 특출나지 않지만 중요한 책이다. 작가가 잠시 잊었던 그 역할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좋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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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 17:17

공지영-하종강의 설전

 

우리 영감님 언성 높아지실 때가 드물게 있다. 그 중 하나가 논문에 각주를 제대로 달아야 한다고 강조하실 때다. 영감님은 근대에 대해 비판하는 연구를 하시지만 형식은 근대 학계 규약을 존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신다. "인용 제대로 하지 않는 건 지식을 도둑질 하는 거야!" 반면에 내가 존경하는 선배는 각주에 대한 학계의 집착이 이전 연구를 진리로 신봉하는 행위일 수 있다며, 이런 관행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각주가 쌓은 권위에 기대 자기 얘기를 얹는 관행은 끼리끼리만 돌려 읽는 논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 사람이 완전히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 모두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지영-하종강의 설전에 더 눈이 갔다. 이 일이 커진 데에는 공지영 작가의 푼수끼가 한몫했다. (공 작가의 푼수끼는 희망버스 등을 편하게 느끼게 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는 갈등을 더 키우기도 한다. 그게 바로 명랑의 딜레마!) 그러나 난 이 사태를 통해 글의 형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기회를 얻길 기대한다. 내 눈 앞엔 윤리와 표현력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글의 형식이 놓여있다.

 

산문을 읽다가 보면 감정이 상향선을 그리며 오르는 구간이 생긴다. 감정이 언덕을 부드럽게 오를 수 있게 엉덩이를 주욱 밀어주는 게 작가의 표현력이다. 그럴 때 각주는 감정을 끊는 가속방지턱처럼 느껴지곤 한다. 공지영과 편집자는 그러한 표현력을 최대로 올리기 위해서 인용을 뒤로 빼거나 아예 뺀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쌍용차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것 역시 윤리적인 일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의지놀이>라는 르포는 여지껏 바닥을 구르며 함께하고 취재하고 글을 써온 다른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글이 공지영이라는 대형 작가의 OEM 하청 상품으로 취급받아선 안 된다. 그건 쌍용차 문제가 지적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뭐라고 해서 빼고 내가 다시 썼더니 내 글이 더 좋더만~'이란 공지영의 새침한 공격은 푼수 인증에 불과했다.

 

<의자놀이>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허무주의'다. 바닥을 벅벅 긁어가며 내몰리고 맞고 싸우는 이들을 바라보며 '저래봤자 되나. 유명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면 해결되지 저래봤자..'라며 외면하게 만드는 데에는 <의자놀이> 같은 책이 한 몫 할 수 있다. 일전에 <도가니> 같은 경우도 공지영의 표현력과 명성의 이면에는 인화학교 문제를 계속해 추적하고 알렸던 이들의 노력이 짙게 배어있다. 공지영의 소설은 그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을 잊었다. 그런 구도 속에서 <의자놀이>에 인용부호를 붙이는가 아닌가는 명예를 둘러싼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또다른 쌍용차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을 준비하는 중요한 논의일 수 있다. 이 설전이 나처럼 글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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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01:09

왜 강제퇴거금지법인가?

경희대 교지 고황 게재


임시방편 용역 규제

 “폭력을 행사해 주민 한 명이 이빨이 나갔고 3명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돌아왔다.”(포이동), “밖으로 빠져나간 용역들 중 어떤 것들은 어디선가 소화기를 구해와 분이 풀릴 때까지 뿜어댔고, 빈 소화기를 한 여성의 머리 위로 집어던졌다.”(명동), “용역깡패들은 쇠지렛대를 이용해 창문을 뜯어내고 소화기를 뿌려댔다. 지붕 위에서는 항아리를 던지기도 했다.”(상도4동)……. 재개발 현장 마다 ‘용역’이 꼭 등장한다. 그들은 자고 있던 사람들을 들어내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협박을 하고, 폭행하곤 한다. 얼마 전에는 재개발 지역의 사진 한 장이 보는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산만한 덩치의 용역들이 할아버지 한 분을 벽에 몰아놓고 조롱하듯 목을 짓누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애처롭게도 할아버지는 손에 “용역깡패 무법천지”라는 항의구호가 담긴 팻말을 들고 있었다. 도처의 재개발 지역에서 용역들에게 맞아서 피가 흐르는 이마, 시퍼런 멍 자국, 깨져버린 가재도구들 등이 찍힌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고 그 때마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과연 어떻게 저런 폭력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인가, 경찰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살던 집에서, 장사하던 곳에서 내쫓기는 사람들이 순순히 명령에 따를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건 사람살이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나갈 수 없다고 저항하는 거주민들과 이들을 어떻게든 내쫓으려는 용역 간에 물리적인 충돌도 그래서 자주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거주민들을 하루라도 빨리 내쫓으려는 용역들이 행사하는 무리한 폭력이 보는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폭력 사실을 접한 이들 대다수가 분노하지만 폭력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법이 용역의 편이기 때문이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이 지난 19일 공개한 '최근 3년간 노동자·철거민, 시설주·용역업체에 대한 불법행위 수사결과 분석 자료'를 보면, 입건된 노동자·철거민 4197명 가운데 3832명(91.3%)이 기소됐지만, 용역업체 직원 등 시설주 쪽에 고용됐다 입건된 288명 가운데 기소된 사람은 116명(39.2%)에 불과했다. 철거민 대다수는 기소됐지만, 기소된 용역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용역을 규제하려는 응급책도 제안하고 있다. 정동영 의원이 발의한 ‘경비업법 일부개정안’이 그것이다. 무허가 경비업자에게 용역경비를 의뢰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전 교육을 받은 뒤 (명부에) 기재된 경비원만 현장에 배치하며, 조직폭력배의 용역경비 투입을 금지하는 등 폭력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골자다. 사태의 심각성이 여러 방면으로 제기되자 수수방관하던 경찰도 지난 21일 ‘용역폭력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민원 현장에는 경비업법상 허가된 경비업체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용역 폭력에 대해서는 조직폭력에 준해 엄히 처벌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규제받지 않고 임의적으로 행해지던 용역의 폭력을 제어하려는 공권력의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단 반가운 발표다. 다만 임시적이고 응급책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용역 폭력에 관한 규제는 ‘어떻게 내쫓을 것인가’에 대한 것일 뿐, ‘내쫓는 것’ 자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을 사유해야 하는 지점

 실제로 분노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용역들이 태연자약하게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행위 상당수가 합법적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은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는 거주민들이다. 막대한 이익이 날 수 있는 장소를 떠나주지 않는 ‘그들’ 때문에 건설사와 재개발 조합은 용역과 ‘계약’을 체결해 ‘그들’을 내쫓는다.

 현재 진행되는 도시정비사업은 소유권에 입각해 가옥 소유주들만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업 진행 중에 공식적으로 세입자들의 의견을 조사하고 수렴하는 과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곳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낼 수 없는 첫 번째 ‘그들’이 된다. 저렴 주거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세입자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지불하던 액수로는 지내던 수준의 거주지에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세입자들은 점차 수도권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편 이윤이 날 수 있는 지역에 몰려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대학교 변창흠 교수는 국토해양부 등이 2009년 발표한 『도시재생 법 제도 및 지원수단 개발 연구보고서 보완본』를 분석하여 전국 70개 재정비촉진지구 중 35개가 서울시에서 지정되었고, 인천시 8개, 경기도 14개 등으로 수도권에 57개로 81%가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 진행의 최우선 목표가 이익 극대화에 맞춰져 있다 보니 사업을 추진하는 건설사와 재개발 조합은 보다 넓은 평수의 고급 주택을 지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구분

전용면적 60m2 이하

매매가 5억 원 미만

전세가 4천만 원 미만

사업 전

63%

86%

83%

사업 후

30%

30%

-



 가옥 소유주들도 사업 후 면적이 넓어지고 값비싸진 주택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추가 분담금을 지불해야 한다. 전세를 놓았던 가옥주의 경우에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줬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액수가 만만치 않다. 이는 재정착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된다. 사업 초기에 추가 분담금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이것을 부담으로 느낀 가옥 소유주들이 재개발 사업을 반대하고 나서기도 한다. 이들이 두 번째 ‘그들’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되돌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 이상,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와 재개발 조합에게 ‘그들’은 공사를 늦추게 하는 돌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재개발 지역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갈등 상황에서 당사자들끼리의 이익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이익의 조정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재개발 사업이 인권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권리와 정보의 비대칭 때문이다. 소유물을 이용해 더 큰 이익을 보려하는 이들과 살던 곳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하고자 하는 이들의 입장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면, 이것을 순전히 이익의 문제로만 사유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법이 항상 전자의 손만 들어주고 있다. 과연 이 법이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이 명시하고 있는 주거권은 소유권과 부딪치는 경우 항상 부차적인 것으로 밀린다. ‘사는 곳’이라는 가치가 ‘사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법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강제퇴거금지법, 보다 근본적인 대책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로 여섯 명이 화염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경찰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채 철거민들만 중하게 처벌받았다. 참사 후 355일 동안 폭력적인 강제퇴거에 문제제기하며 장례가 미뤄지기도 했다. 재개발 사업 진행 과정의 문제에 대해 적지 않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용산국민법정이 있었다. 국민법정이 열리면서 잘못된 개발 정책을 바꾸고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많이 모였다. 장례 후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로 전환하면서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2010년에는 개발과 강제퇴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인권․사회단체와 철거민단체들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법안을 마련했다. 그해 겨울에는 강제퇴거감시단을 운영하며 7개 지역에서 개발과 강제퇴거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밝히는 활동을 하면서 강제퇴거금지법의 방향과 세부 내용을 점검하기도 했다.

 2011년 1월 용산참사 2주기를 맞아 추모토론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강제퇴거금지법안을 발표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었다. 이때 나온 의견들과 이후 연속으로 진행된 쟁점포럼을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금의 강제퇴거금지법안이 나왔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기존에 나온 용역규제 법안이나 정책과는 어떤 면에서 다를까?

 우선 강제퇴거금지법은 “모든 사람은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라는 상식을 권리로 명시한다. 매번 위협받던 ‘주거권’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금까지 재개발 당사자 중 하나로 강제퇴거를 방관·조장하였으나, 강제퇴거금지법이 제정되면 강제퇴거를 예방하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의무를 분명하게 지게 된다.

 둘째로, 기존의 이익 중심, 미관 중심의 개발과는 달리 강제퇴거금지법은 거주민들의 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개발로 방향을 전환토록 한다. 보다 크고 보기에 세련된 개발이 아니라 거주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방식의 개발을 위해 거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협의할 수 있는 절차를 강제한다. 여기서 ‘거주민’은 기존의 가옥 소유주를 포함하여 그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지역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사람 모두 강제퇴거금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셋째로, 거주민들의 재정착 권리를 보장한다. 서울시가 2008년 국회 행정안전위 김희철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서울 재개발·재건축 원주민 재정착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재개발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44%에 불과했다.

 재개발 지역은 지은 지 20~40년이 넘은 노후한 건물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비율이 높다. 저렴 주거는 사라지는데, 거주민들에게 적절한 재정착대책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개발 사업이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개발 관련 개별 법령들에 앞서 모든 거주민들에게 재정착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재개발 사업자들은 거주민들이 개발 사업 시행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거나 일하는 것을 보장하는 재정착 대책이 수립해야하고, 이에 대해 거주민들과 성실한 협의를 해야만 한다.

 마지막은 여타 다른 용역규제 법안과 정책을 포함하는 성격이다. 강제퇴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과 그에 대한 공무원의 책임 방기는 강제퇴거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다. 기존 법원의 판결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개발 사업의 시행 주체나, 계약 만료를 내세워 주거 대책이 막막한 세입자들을 쫓아내는 개별 소유주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말에 끄덕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곳을 사지는 못했지만 삶의 터전으로 가꾸고 정착해온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재정착 대책에 대해 협의가 완료되지 않을 때 퇴거를 자의적으로 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강제퇴거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자 한다. 피치 못할 퇴거 과정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이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 규정도 마련함으로써 강제퇴거 현장의 폭력을 예방하려고 한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험난하지만 꼭 해야 할 일

 새로운 법안이 제정되기까지 언제나 많은 난관이 있고 넘어야할 장애물들이 있다. 강제퇴거금지법은 대형 건설사들과 재개발 조합의 이익보다 세입자를 비롯한 거주민들의 ‘거주권’을 우선하고 있기에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종자돈으로서의 부동산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의 거주지를 사유한다는 점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거주에 관한 문법을 새로 쓰자는 가볍지 않은 제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은 머뭇댈 수 없는 시급한 대책이기에 차질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2009년 용산에서 벌어진 끔찍한 악몽은 잊혀 지기는커녕 상도동으로, 명동으로, 포이동으로…, 점차 더 자주 되살아나고 있다. 재개발 사업 구역이 늘어날수록 그만큼의 절규가 더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강제퇴거금지법은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통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는다면, 재개발의 야만은 제어되기 어려울 것이다. 용역의 잔혹한 폭력에 대한 분노는 이제 근원적인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으로 이어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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