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출간 이후 잠시간 시도되었던 소위 '20대 목소리'에 관한 작업들이 잠잠하다. 오히려 <88만원 세대> 출간으로 잠시 잠잠하던 '20대와 10대 비교'는 여기저기서 분출되는 모양새다. 특히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썰렁한 글은 그러한 담론들의 모자이크 같다. 임근준의 글이 다른 '20대/10대 비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김용민 등은 "10대가 촛불을 들었기 때문에 희망이다"라고 선언하지만 임근준은 "10대는 조기유학을 많이 갔다 와서 뭔가 바뀔 것이다"라고 선언한다는 점이다. 조기유학으로 이른바 "문화적 변환"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건데, 설레발을 치는 김용민보다는 썰렁한 판단에서 멈춘다는 점에서 낫다. (그러나 왜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10대가 희망이다"는 부류의 이야기들이 별 영양가가 없기는 하지만 현재의 20대 탈정치화 또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20대 전반에서 표출되는 "그래서 어쩌자구?"는 일본사회에서 '마케구미(負け組')로 전락한 이들의 냉소주의와 여러모로 닮았다. 여러가지 형태로 분출되는 저항들에 대해 "법을 벗어나서 어쩌자구?"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법에 대해 신뢰하지도 않는다.
"법만 지켜서 어쩌자구?"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신자유주의 속에서 체화하여 어떻게 해서든 오로지 스스로 '카치구미(勝ち組)'에 입성해야 한다는 율법만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셈이다. 운동도, 법도, 구원을 가져다 줄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간 '20대 목소리'에 관한 작업들은 두 가지로 분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비정규직으로 세상에 첫 발을 딛게된 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늪을 헤어나올 수 없는 사례들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한 노력들은 다양하게 지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20대들이 욕망하는 '카치구미'의 현실을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1년 전쯤 엄기호 선배가 "소위 활동가라는 선배들만 찾지 말고, 엄청 부자인 선배들한테 찾아가서 밥도 사달라고 해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엄청 부자 선배를 찾아가서 그가 행복한지, 그의 삶은 어떤지 구체적으로 묻다보면, 거기에서 자기 길을 발견할 친구도 있고 혹은 부자라는 것이 별 것 없다고 판단하는 친구도 있을 거다. 어떤 식이든 자아발견에 도움 된다." 요즘 '카치구미'로 선망하는 게 끽해야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라 굳이 "엄청 부자"를 찾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카치구미' 중에서 내가 접한 이들 상당수는 또한 불안할 뿐이었다.

어차피 "10대가 희망이다"라는 설레발을 욕해도, 혹은 "20대가 개새끼"라며 욕해도, 변할 것 없는 꼴이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탓을 하기보다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현실조건들을 가시화하며 땅에 발 딛은 기획들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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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글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지인의 물음에 나는 "김용민이 그런 글을 썼는지도 모를 20대가 더 많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88만원세대>만 하더라도, 유명세 덕분에 20대 중에 그 제목을 아는 경우는 많지만 정작 그것을 읽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어찌되었든 한동안 시들하던 '20대 망국론'이 다시 나온 셈인데, 별로 영양가는 없어보인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이야기는 어떤 각도로 봐도 쓸모없다. (무적의 386이 버티고 서있던 6.10항쟁 직후에 진보정당이 집권이라도 했단 말인가?)

대체 왜 갑자기 '욱!' 했는가 살펴보면 가관이다.
"5월 30일. 서울광장이 ‘털렸다’. 검은 장정들이 어스름한 새벽, 잔디밭 안으로 밀고 들어와 장악한 것이다. 당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를 열기 위해 광장을 사수하려 했던 소수의 민간 활동가들은 전경의 완력(腕力)에 연행 또는 퇴거당하고 말았다. ‘노무현 추모 열기’로 재 점화될 줄 알았던 촛불은 그렇게 무력하게 꺼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은 “80년대 대학생들이 2009년에 부활해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라며 덧없는 통분(痛憤)만 쏟아냈다." 미안하지만, '노무현 추모 열기'로 재점화된 촛불에는 두려움만 느낄 뿐 관심없다. 게다가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물어 봤다"면, 한 한기 동안 강의를 진행한 강사 스스로의 자질에 대해서 성찰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학생 똥 굵기에 뭔 관심을..

논산 훈련소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다. "선배들이 지킨 조국, 이제는 내 차례!"  김용민의 '욱!' 은 딱 이 수준이다. 김용민이 말하는 "무적의 386"이나, "존재감은 없지만
김영삼 정권의 수구 보수적 공안정국에 항거했던 90년대 학번"의 유통기한은 10년도 채 안된다는 말인가? 예라고 든 것도 "6월 항쟁의 중심", "수구 보수적 공안정국"이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런 게 문제라면, 20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투쟁할 게 없었잖아요~"라고 변명한들 뭐라할 것인가. 누구 말처럼 술 먹고 지 성질 못이겨서 후배들 패는 선배나 다름없다. "악!! 세상이 왜 이따구인거야! 니들 똑바로 못해?"


이런 선배들에게도 후배들은 있기 마련인 법! 김용민의 글에 호응이나 하듯, "
처신이 쉽지 않고 운신의 폭이 좁은 소수"의 20대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배들이 지킨 조국, 이제는 내 차례!"란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성명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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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9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 둥글게 2009/06/29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여러가지로 손발이 오그라드는구나.
    히밤, 쾅!

출처: http://news.cyworld.com/view/20090621n04242?mid=n0405

왜 그리 당신은 미련하단 말입니까.

가톨릭학생회 지도신부를 마치시고 떠나시던 날, 서럽게 울었습니다. 당신이 곡기를 끊고 저항하는동안, 그 이후에도 나는 내내 부끄러운 모습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가웠습니다. 대학생들과 함께 한 긴 시간동안 힘들었을 당신에게 이제야 휴식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간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고 여겼습니다. 나 역시 무언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가르쳤던 인간에 대한 사랑, 뭐 그런 것이 나에게도 생겼다고. 그러나 자만이었습니다. 당신은 또 그 자리에 있고 나는 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보세요. 당신이 말했던 사랑은 당신과 함께 땅에 짓눌리고, 그들은 당신이 그럴 법한 인간이라 말합니다. 그러니 보세요.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을 다해 살면 된다"던 당신의 이 처참함을요. 솔직하게, 나는 두렵습니다. 그들은 힘과 자본을 가졌고, 우리에게는 짓밟히는 몸뚱이와 너무도 적은 이들이 믿는 사랑 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리 당신은 미련하단 말입니까? 다들 객관을 내세워, 중도를 내세워 편안한 삶을 택하고 살 때, 당신은 왜 그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 안에 공허한 욕심들이 많이도 들어차있다는 것을 또다시 알았습니다. 연대라는 것은 내려놓고 또 내려놓는 과정이군요. 어느 날 나도 당신 앞에서 좀 떳떳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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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둥글게 2009/06/21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ㅠ_ㅠ

  2. 2009/06/24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3. 2009/06/24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