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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20:20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서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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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에 정치적인 글을 올리지 않던 이들도 죄다 김문수 도지사 뉴스를 링크해두고는 ‘뭐야 이 인간!’이라며 분노를 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그 사건을 풍자하는 패러디물이 줄이어 올라왔다. 그날 하루, 타임라인은 김 지사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다.
 
김문수 안의 ‘김 부장’
 
사건은 이랬다. 지난 달 말 한 노인요양원에 방문한 김 지사는 환자 이송체계 등을 문의하기 위해 소방서에 전화를 했다. 그는 긴급전화인 ‘119’번에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은 소방관에게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장난전화로 여긴 근무자가 전화를 끊자 다시 전화를 건 김 지사는 전화를 받은 다른 소방관에게 바로 전 전화를 받은 근무자의 관등성명을 요구했다. 이 근무자 역시 장난전화로 여겼고, 두 소방관은 모두 좌천되었다.
 
이 사건에서 김문수 도지사의 권위적인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여러 사건들 중에서도 왜 이 사건은 저렇게 널리 공분을 사게 만들었을까? 자신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던 이들까지도 ‘뭐야 이 인간!’이라며 분노를 표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김문수라는 사람이 너무도 독특한 일을 벌여서 그랬을까?
 
도지사이기 때문에 긴급전화에 대고도 “도지사입니다” 한 마디면 설설 길 거라 여기는 그 태도는 보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런 행태는 오히려 익숙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라며 항상 우악스러운 태도로 명령하고, 마구 뭐라고 쏘아붙였다가 자기 잘못이라는 게 드러났음에도 미안한 기색 하나 없는 상사들을 직장에서 매일 마주치고 있는 우리 아닌가.
 
그렇다보니 실상 이 사건에 분노하던 이들이 김문수 도지사의 행태에서 본 것은 자기 직장 상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의 존재를 무시하던 직장 상사에게 차곡차곡 쌓여가던 분노가 이 사건을 통해 터진 셈이다.
 
‘우리 안의 MB’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김문수 안의 김 부장’이었다. 직장에서는 비루하더라도 삼킬 수밖에 없었던 분노가 김문수라는 인물의 행태를 향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도지사에게 분노의 댓글을 달아도 직장 상사는 꿈쩍도 없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이 계속해 팍팍해져만 간다. 야근이 계속되지만 누구 탓을 할 데가 없다. 피곤한 건 오로지 ‘간 때문’이다. 먹고 살려고 돈을 버는데 돈 버느라 죽겠는 ‘삶’ 그 자체가 문제라는 걸 이제는 다들 느끼고 있다. 다만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듯 아무도 말하지 못할 뿐이다.
 
증언과 고백, 그리고 동지와 동료
 
삶 그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정작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에 대해 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당장에 등록금 문제가 이슈가 되면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때문에 얼마나 힘드냐고 묻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등록금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일 때로 국한된다. 직장에서의 고된 삶을 이야기하려면 다들 힘든데 나약해빠졌다는 눈총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게다가 말한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식의 냉소도 삶을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삶에 대해 말한다는 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하는 것 보다 더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엄기호의 이번 책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말하기 어렵던 삶에 대한 ‘증언’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삶을 강요받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이름을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생활 방식과 내용을 강요한다.(…)이 삶의 형식에 대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이 삶의 형식이 인간이 견디며 살 만한 것인지를 나의 경험을 가지고 드러내고 증언해야 한다. 그래야 이 사회가 해오는 방식대로 사회를 옹호하고 사람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이 옹호되고 사회가 폭로될 수 있다.”
 
저자는 증언과는 달리 ‘고백’은 사회를 옹호하고 사람을 폭로한다고 구분한다. 대표적인 고백의 형태는 희생양 찾기다. 대표적인 희생양 찾기인 왕따의 경우 개인에게 가해지는 고백의 요구는 이런 표현 속에서 드러난다.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왕따 당하는 애들이 원인을 제공하기는 해요.”
 
고백의 관점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 그 원인을 제공한 개인을 찾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요구는 학교에서 써내야 하는 글에서부터 개신교 일각의 ‘긍정 교리’까지 폭넓게 퍼져있다. 고백을 통해 사회는 보호되고 대신 사람이 폭로되는 것이다.
 
반면에 증언은 정반대로 사회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한다. 저자는 증언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증언은 그리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증언을 하려면 스스로를 우리 사회의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권력에 의해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에 대한 용기는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 맞서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권력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은 권력에 맞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 권력에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더 강력한 ‘진실에 대한 용기’다.”
 
저자는 이처럼 증언의 힘을 신뢰하면서 사회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하고자 노력한다. 저자가 만났던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카이스트 학생들, 그리고 “운명이다”라며 또한 불운한 죽음을 맞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들과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IMF 이후로 더 이상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급격히 변한 우리의 삶과, 우리가 기대하면 할수록 삶에서 더욱 절망하게 되는 까닭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책이 파국으로 떨어진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의를 따라 읽다보면 ‘희망’을 기다리는 용기를 얻게 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약속된 미래를 위해 힘차게 돌격하는 식의 ‘기대’와 희망은 다르다고 구분한다. 희망은 “늘 깨어 있으라”던 예수의 가르침과 같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올 희망이 찾아왔을 때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긴장감이 희망에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저자는 함께 희망을 기다려줄 수 있는 ‘동료’를 강조한다. 동료 역시 ‘동지’와는 다르다. 동지가 뜻을 나눈 사람이라면 동료는 삶을 나누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이처럼 저자는 미세하지만 명확하게 달라지는 용어들의 쌍들을 제시하고 있다. ‘경험과 체험’, ‘분노와 격노’, ‘공감과 동감’, ‘기대와 희망’ 등등…, 저자는 이러한 용어들 사이의 차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보다 면밀하게 증언하고 희망을 기다릴 수 있는 용기 또한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정치적이지 않은 책?
 
 이 책은 쉽게 주목받지 못하는 ‘삶’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통념은 정치와 일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높게 쌓아둔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주식, 부동산 투자로 생계를 이어가곤 한다. 대중 집회에서 목청껏 구호를 외치던 이도 회사에 돌아오면 끽소리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신 있게 ‘내가 이정도로 멋졌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상의 ‘삶’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않고, 들어줄 거라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삶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고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를 두고도 “정치적이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곤 한다. 당장 내년에 선거가 연이어 있는 상황에서 ‘공감’, ‘경험’, ‘동료’ 등을 이야기하는 게 한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선거 구호에서조차도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하고 있듯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서울시장”과 “내 삶을 응원하는 첫 번째 서울시장” 간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히 다른 삶에 대한 접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바꿔야할 것으로 보는 것과, 응원하고 함께 할 것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게다가 삶이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중요한 건 파국에 처한 삶을 어떻게 함께 견디면서 ‘희망’을 깨어 맞이할 것인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가 반가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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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22:46

새해 맞이 포스팅

어렸을 때 오랫동안 수영 개인레슨을 받았었다. 한 살 때 대천 앞바다에서 아버지가 장난을 치셔서 물 속에서 거의 죽다 살아난 뒤에 나는 극도로 물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공포감을 극복하게 하려고 어머니는 개인레슨을 붙여 주셨다.

수영장 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수강생을 두고 고민하던 강사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탈의실 키를 수영장 바닥에 빠뜨리더니 누가 먼저 저걸 잡아 올리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장난같은 내기라 마음이 편해져서 나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키를 잡으려고 머리를 깊숙하게 쳐박았다. 하지만 머리를 집어넣을수록 몸이 계속 떠올라서 키를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한참을 바둥대던 중에, 몸이 뜨려면 머리를 최대한 깊숙하게 물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불현듯이 깨닫게 됐다. 그간 가라앉을까 무서워서 쳐들었던 머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 경험은 내겐 하나의 좌우명과 같다. 내 얼굴을 드러내고 싶을 때 오히려 몸은 가라앉는다. 내 얼굴을 깊숙하게 집어넣을 때 비로소 몸은 뜬다. 자주 겁 때문에 얼굴을 쳐들어 일을 망칠 때마다 나는 이 경험을 되새길 필요를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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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8 06:53

대학원생 이야기

1. 친구의 조언처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진실을 외면하면 진실은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온다고 전우익 선생이 그랬던가.

2. 공부를 하고 싶었다. 감옥에 들어가서 수없이 접했던 군대와 국가에 관한 질문들 때문이었다.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나?", "그래도 군대 갔다 온 애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의무를 다해야 권리도 지킬 수 있는 거지."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평택 대추리와 관련해서 들었던 비슷한 질문들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지의 탓으로 쉽게 돌리기에는 이 질문들을 하는 이들의 신념이 굳건해보였다. 조소할 수만은 없었다. 저 신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군사주의에 "포섭"되었다고만 말하면 뭔가 허전했다. 적어도, 포섭된 이들이 왜 그러한 신념을 보이는지라도 설명해야만 반복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 대학원에 처음 가서 느꼈던 우울함은 당혹스러웠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짓누르고 있는지 의아했다.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공부라면 좀 신나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현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니까 그렇게 우울하기만 한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활동가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연구실 마다 나온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와 우연히 식사를 같이 했다. 내가 담배를 피고 있던 모습을 보고 그가 "무슨 고민이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늘상 하던 안부 인사처럼, "취직 생각한다더니 잘 돼가요?"라고 되물었다. 으레 하던 인사였지만 그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뗐다. "이번 학기는 그래서 좀 힘들었어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저는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이어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신중치 못했는지 또 느꼈다. 나는 그 역시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또다른 유예 시간을 보내고 싶다가 교수 자리 하나 바라는 이 중 하나일 거라 여겼다. '왜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열심히 하다가 보장된 자리를 얻어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 이 게 내가 대학원생들을 바라볼 때 기댔던 통념이었다.

그러나 그 통념은 아주 피상적이었다. 그는 아주 "실용적인" 전공을 게다가 복수로 듣고 졸업을 했다. 학자금대출을 갚을 돈이 필요했기에 한동안 직장에 다녔고, "생각 보다 쉽게" 대출금의 상당한 금액도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실용"과는 거리가 먼 인문대학으로 진학했다. 공부는 즐거웠고, 비록 공부를 하며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도 했지만, 계속해 공부를 하고도 싶었다. 물론 어떤 변혁 운동의 실천과는 관련이 크지 않은 공부였다. 그러나 그의 전공에서 자신이 이해한 바를 다른 이들과 더 깊이 나누는 다른 종류의 실천도 꿈꿨다. (정리를 하다 보니, 공부가 왜 재미있었냐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공부가 어떤 한계가 있는지 다른 무언가를 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가졌던 피상적인 인상 비평은 대단히 틀렸다는 걸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학문의 유용성이라는 걸 '자본으로 얼마만큼 환산 가능한지'나 '얼마만큼 이름을 얻을 수 있는지' 따위와 같게 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 정반대의 조급함이 내게 있었다. 내가 "활동가가 되고자 한다."고 자꾸만 말을 했던 건 사실 또다른 '학문의 유용성'을 증명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학문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조급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던 이는 나 보다는 그였다. 따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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